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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화학 20. 최초의 발견자와 전자간증 예방효과 아스피린

아스피린 이야기

 

"어제는 비를 맞으며 집에 왔습니다. 밤이 되니 열이 났습니다. 엄마가 사다 준 어린이용 바이엘(바이어) 아스피린을 먹고 나았습니다.” 만화배경과 함께 위와 같은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광고가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 유행한 것이 벌써 30년도 더 지났다. 세월이 가면 전보다 더 좋은 기능을 가진 약이 개발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한 알에 100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싸구려 약의 하나인 아스피린이 20세기를 관통해 21세기에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특이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지난 10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약이 아스피린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스피린을 발견한 호프만의 효심 아스피린 발견의 전초전이 벌어진 것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다. 아스피린의 구조를 이루는 살리실산이 발견된 것은 1828년의 일이었고, 버드나무껍질에서 분리한 물질이 약품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초보적인 연구는 1830년부터 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염료공업 분야의 촉망받는 회사였던 독일의 바이어 사는 약품 개발에도 참여하기 시작하여 1888년에 펜아스틴이라는 진통해열제를 개발하면서 제약회사로서의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1890년에는 약리연구소를 설립해 약품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아스피린의 발견자로 기록되는 호프만(Felix Hoffmann, 1868-1946)이 입사를 한 것은 1894년의 일이었다.

 

호프만은 1891년에 뮌헨 대학에서 약학사 학위를 받았고, 1893년에 화학박사가 된 젊은 연구자였다. 중년이 지나면서 류머티즘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유일한 류머티즘 치료제인 살리실산을 다량 투여할 경우 맛이 나쁘고, 위장장애와 같은 부작용이 자꾸 발생하자 바이어 제약회사에 다니던 아들에게 더 효과적인 약을 구해 달라는 요구를 했고, 이것이 훗날 아들이 아스피린을 발견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회사에서 호프만에게 주어진 과제는 다른 것이었지만 호프만은 아버지를 위해 틈나는 대로 살리실산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살리실산에 의한 부작용이 나트륨염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호프만은 나트륨염을 다른 것으로 치환하려는 연구를 시도한 끝에 1897년 8월 10일, 한 세기가 지나도 변치 않는 명약인 아세틸살리실산 개발에 성공했다. 1898년에 임상실험을 실시했으며, 1899년에 살리실산보다 부작용이 적은 류머티즘 치료제인 아세틸살리실산이 아스피린이라는 상품명으로 탄생되었다.

 

아스피린은 체내에서 살리실산으로 변해 약리작용을 나타내므로 살리실, 살리실산, 아스피린은 모두 살리실산으로 작용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부작용이 가장 적다는 이유로 아스피린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되었다. 아스피린이라는 상품명은 아세틸(acetyl)의 "a"자와 버드나무속(Spiraea)의 "spir"을 합쳐서 고안된 것이다. "누가 아스피린을 최초로 합성했나?" 아스피린을 최초로 합성한 사람은 누구일까? 호프만이 자연에서 추출한 물질을 이용하지 않고, 부작용이 심하지만 류머티즘 관절염에 사용되던 살리실산의 나트륨염의 구조를 바꾸어 완전히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은 1897년의 일이었지만 이것이 아스피린의 최초 합성은 아니다. 호프만보다 자그마치 44년이 앞선 1853년 게르하르트(Charles Frederick Gerhardt, 1816-1856)가 다른 화학반응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아스피린을 합성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합성자는 호프만이 아니라 게르하르트로 수정되어야 할까? 참고로 게르하르트 사망 100주년이던 지난 1956년, 게르하르트의 고향인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시민들이 아스피린을 합성한 그의 공적을 기리는 봉헌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생각을 바꾸어 보겠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아메리카에는 한 명의 사람도 살지 않았다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는 없을 것이다. 또 바이킹이나 중국인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교과서에 실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양인 중심의 역사관에서 “최초” 란 일반적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후대에 영향을 미친 최초”를 가리키기 때문이며, 우리의 학문은 아직까지 서양인들의 학문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게르하르트가 용도에 관계없이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의도로 아스피린을 합성했다면 후세에 최초의 아스피린 합성자라는 별명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우연히 합성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간 게르하르트에게 "최초"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서양인들의 판단으로 생각된다. (물론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과 가깝게 연관된 경우에는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실제로 호프만이 합성한 아스피린은 처음부터 약으로 쓰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개발되었으며, 순수분리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게르하르트보다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아스피린이 자간전증(전자간증, preeclampsia) 예방 자간전증이란 임신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질환으로 부종(몸이 붓는 현상), 단백뇨(소변으로 배출되는 단백질 함량이 많아짐), 경련, 고혈압 등이 동반되는 질병이다.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으며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분만과 더불어 상태가 호전되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분만 후에도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되는 수가 있다. 정확한 발생기 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혈관이 수축되는 현상에 의해 여러 가지 증상이 동반된다. 저용량 아스피린이나 칼슘을 투여하면 예방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는 했으나 흔히 사용되지는 않는 방법이다. 1897년에 아스피린이 류머티즘 치료제로 처음 개발된 후 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은 알려지지 않은 채 해열, 진통, 소염 효과를 위해 널리 사용되었다.

 

작용기전이 알려진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 베르크스트룀, 사무엘슨, 베인 등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아스피린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논문이 수시로 발표되고 있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면 세계적인 저명학술지 란셋(Lancet)의 인터넷판 5월 17일 자에는 아스피린이 자간전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추측되는 기전은 항응고 효과에 의한 것이라 생각되며, 이미 알려진 효과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렸다는 점에서 아스피린의 자간전증 예방효과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 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암에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항암제가 특정 암에만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항생제로 개발한 물질이 항암효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글리벡과 같이 특정 암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약이 이유는 설명할 수 없으나 다른 암에도 효과를 보이는 것과 같이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약물의 새로운 효과가 알려지는 것을 볼 때 100년 이상 널리 사용된 아스피린의 효과도 현대의학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인체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