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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화학 21. 끝나지 않는 사투, 인류와 결핵

의학세계사- 질병과의 처절한 사투, 인류와 결핵

 

고대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어 '질병의 왕'으로 불린 결핵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었다. 천재로 알려진 데카르트, 칸트, 스피노자,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쇼팽 등은 모두 결핵으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천재 시인 이상(李箱)도 결국 결핵의 희생양이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계기로 전 유럽을 휩쓸며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결핵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를 습격하고 있다. 실제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이 병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10대, 20대 젊은 층의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결핵 환자는 모두 16만 명이다. 지난해에만도 모두 4만 1천여 명의 결핵환자가 새로 발생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7천7백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70대가 7천5백여 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지난 2004년 2천3백여 명이었던 10대 결핵환자 발생자 수는 2005년에는 2천6백여 명, 작년에는 2천825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젊은 결핵환자가 최근 늘고 있는 원인으로 우선 시기적으로 영, 유아기 때 맞은 BCG, 결핵 예방 접종의 효력이 다하는 때인 데다 입시 준비로 무리하기 쉬운 고등학생들이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어 결핵균에 쉽게 감염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핵균은 다른 급성 전염병균보다 주거환경과 영양상태에 민감한 질병이기 때문에 더럽고 축축한 도시 노동자의 숙소는 결핵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한 만성감염증으로 폐결핵 환자로부터 나온 미세한 침방울에 의해 직접 감염된다. 감염된다고 해서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피로감, 식욕감퇴, 체중감소, 기침, 가래, 흉통 등의 증상을 보인다. 현대 의학은 항결핵제만 꾸준히 복용하면 치료가 되며 환자가 약을 복용하고 약 2주가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기 때문에 따로 입원을 하거나 격리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

 

결핵의 대표적 예방 방법으로 출생 후 결핵예방접종(BCG)을 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BCG는 우형결핵균의 독성을 약하게 순화시켜 만든 것으로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결핵에 대한 면역을 갖게 하는 백신이다. 결핵균에 감염되기 전 BCG 접종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병률이 1/5로 줄어드는데, 이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된다. 미감염자에게 BCG 접종을 하면 결핵을 예방할 수 있으며 전염원인 환자를 찾아내어 치료를 해주면 전염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므로 결핵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 2030년경 인류는 과연 결핵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같은 물음에 선뜻 답하기는 어렵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위협한 결핵은 아직도 지구상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생명을 해마다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제내성결핵은 여전히 인류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다.

 

이 결핵은 결핵 치료제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약제 아이나와 리팜핀이 듣지 않는 결핵을 말한다. 완치율 90% 이상인 일반 감수성 결핵과 달리 완치율이 50% 내외밖에 안될 정도다. 전파 속도가 빨라 2004년 이후 매년 전 세계적으로 40만 명이 새로 발병하고 있다. 최근 추세를 볼 때 결핵은 전 세계 인류의 발목을 잡고 괴롭힐 공산이 다분하다. 30년, 40년이 지나도 인류가 결핵을 박멸시킬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은 결핵의 생존능력 때문일 것이다.

 

이 병은 호흡기 전염성 질환이므로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무차별적으로 감염되는 특성을 가진다. 그런데 다제내성결핵 확산을 채 막기도 전에 인류는 또 다른 결핵인 '슈퍼내성결핵'의 역습에 노출되고 있다. 이 결핵은 대부분의 항결핵 약제에 내성이 생겨 사망률이 85% 이상인 매우 치명적인 병이다. 슈퍼내성결핵은 최초 보고 이후 G8 선진국을 포함한 28개국에서 발견되었다. 2006년 9월 세계보건기구는 기존의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신종 '슈퍼 결핵'이 유럽에서 급속히 퍼지면서 슈퍼내성 결핵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슈퍼 결핵 확산에서 우리나라도 예외 지역이 아니다. 국제결핵연구센터 연구에 따르면 국내 다제내성결핵 환자 중 약 25%가 슈퍼내성결핵으로 분석되었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결핵과 인류의 처절한 사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