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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화학 16.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1. 오파린은 실험을 통해 “기어 다니는 지렁이가 생길 수 있다”라고 주장한 게 아닙니다. 또 “유기물질 덩어리인 코아세르베이트를 만들어 놓고 계속 기다리면 그 속에서 알이 부화되고 새끼가 나와 날아다닐 것”이라고 주장한 게 아닙니다. 지구가 생성되고 오늘날까지 역사를 화학과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가정해 본 겁니다. 만약 그의 가설이 옳다고 해도 직접 목격하려면 몇 백만 년은 살아야 합니다. 먼 우주 속에서 폭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진으로 보는 블랙홀이 정말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인지, 가서 직접 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이론에는 “이러니까, 저렇게 될 것이다”라는 가설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 가설을 입증시킬 수 있는 근거가 뚜렷할 때 하나의 이론이 탄생하는 겁니다. 과학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생명체에 대한 정의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프레드 윌슨 박사 이야기를 조금 더 소개해 볼까요? “Philosophers have long deliberated over the definitive feature of living systems. The distinction between living and non-living, which was widely discussed at the 20th century, has lost much of its interest to current biology. “철학자(학자)들은 생명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한 정의를 내리는 데 오랫동안 골몰해 왔다. 생명체와 비생명체 간의 논쟁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활발히 전개됐으나 현대 생물학에 이르러서도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부연 설명하자면 각종 단백질연구, 생명과학, 유전과학 등 DNA를 포함해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요소에 관한 연구는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생명기원에 대한 연구는 현대 과학에서도 별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A growing conviction, intuitively felt by many biologists, is that no clear line can be drawn between the living and the non-living. The bridge between what is and is not obviously alive consists of a range of problematic agents, including viruses and genes, which appear to be living at times and non-living at other times.” “그러나 많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직관적으로(분명하게) 느끼는 확신은 생명체와 비생명체 간에 분명한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죽어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에 대한 연구는 항상 논쟁의 불씨가 된다. 즉 바이러스, 유전자들로 이들은 생물체에서 주로 나타난다. 또 어떤 때는 비생명체에서도 나타난다.”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담배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 불리지만 비생명체로 봅니다. 그러면 DNA는 어떤가요? 그리고 RNA는요? 생명체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생명과 비생명 간의 경계를 짓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는 생명철학, 생명철학자도 등장하는 겁니다. 윌슨 박사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입니다. “Once we get down to DNA, the prime substance of life itself, we are as close to the basis of life as we can get. Without DNA, living organisms could not reproduce, and life as we know it could not have started. All the substance of living matter –enzyme and all the others whose production is catalyzed by enzymes—depend in the last analysis on DNA. How, then, did life, start? “생명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DNA(관련 지식)에 접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생명의 기본에 대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접근했다. DNA가 없으면 생명체는 복제가 불가능하며 생명체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물질, 즉 효소나 효소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의 본질에 대한 분석은 마지막으로 DNA에 의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게(DNA) 과연 생명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가?” 생명의 기원과 본질에 관련해 우리의 의문점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 심지어 유명한 신학자들도 자연발생을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학자들은 창조론을 부정한 것 아니냐고요? 아니죠. 생명에 대한 정의는 영원한 숙제?  “Aristotle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spontaneous generation. So did the great theologians of the Middle Ages, such as Thomas Aquinas. So did William Harvey and Issac Newton. After all, the evidence of one’s own eyes is hard to refute.”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발생을 믿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시대의 대단한 신학자들도 믿었다. 그리고 윌리엄 하비와 아이작 뉴턴도 자연발생을 믿었다. 그러나 자신의 눈에서 본 이론을 확인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발생이 주는 의미는 광범위합니다. 쓰레기통에서 구더기가 발생한다는 것에서부터 단백질에 바탕을 둔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까지 말입니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이 나왔을 때 학자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파린이 주장한 것처럼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이어져, 그 유기물이 단백질이 되고, 다시 자연적인 화학반응에 의해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됐고 이미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가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파린의 대단한 업적은 뭔가요? 그러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대단히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는 겁니다. 또 그러한 과학적인 접근이 과학자들 사이에 상당히 먹혀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빙성이 있다는 이론이라는 겁니다. 생명의 기원을 창조에 두는 기독교 이론의 대부 아퀴나스는 왜 자연발생을 주장했느냐고요? 기독교 이론을 부정한 건가요? 아닙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은 공부와 인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자연발생설=기독교 부정’이라는 방정식이 아닙니다. 그러한 단순한 방정식 때문에 종교가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온 적이 많죠.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자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생명체가 새롭게 계속 등장합니다. 그게 진화든 창조든 간에 말입니다. 아퀴나스는 자연에서 생명체가 새롭게 발생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구더기도 될 수 있고 벌레도 될 수 있습니다. 이구아나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퀴나스는 한 발 더 나가 자연현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revelation)은 신의 의지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으로 생명체가 발생하되 그것은 신의 뜻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결국 아퀴나스의 주장은 자연발생과 창조는 동일하다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또 신은 창세기에만 창조한 게 아니라 계속 창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관대한 이론입니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로마가톨릭의 확고부동한 신학이론 대성자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는 겁니다. 아퀴나스는 신학자이기 앞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모태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과학)을 받아들여 그것을 기독교 이론의 한 부분으로 접목시킨 대단한 사상가며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이기적이고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게 아닙니다. 대단한 이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퀴나스는 자연발생을 신학의 한 부분으로 접목시킨 이론가  '생명의 기원'에서 오파린은 전통적인 자연발생을 과학적 입장에서 비판했습니다. 지구의 원시상태를 가정하고 생명의 발생과 현재 형태의 생물로 진화하기까지의 과정의 개요를 제시한 겁니다. 그는 원시대기가 수증기, 수소, 암모니아, 메탄 등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체들이 방전에너지와 자외선을 흡수하고 서로 반응하면서 간단한 아미노산과 그 밖의 유기물이 생성되었으며, 다시 이들이 비에 녹아 바다로 흘러 들어가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겁니다. 이 코아세르베이트가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면서 생명체로 진화했다고 본 거죠. 자연발생을 놓고 맞지 않다는 가설을 처음으로 실험에 옮긴 학자가 바로 우리가 자주 듣던 레디(Francesco Redi, 1626~1697)입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의사 출신입니다. 피렌체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해 병원을 열었으나 장사가 잘 안돼 문 닫고 시인으로 활약합니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찬송한 '토스카나의 주신'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술과 시를 좋아했습니다. 천성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약을 주고 치료하는 일이 성격에 맞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성격이 유별난 그에게 병원사업이 성공할 리가 없죠. 그는 기이한 과학자로 많은 일화도 남겼습니다.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레디는 자연발생이 맞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고기를 깨끗한 천으로 씌웠습니다. 파리가 알을 슬지 못하게 되자 고기는 썩기는 했지만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 자연발생을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1668년에 '곤충에 관한 실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의사인 레디는 내장의 기생충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책까지 냈느냐고요?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도 대단하고, 또 그 실험을 체계적으로 진행시켰다는 것만도 대단한 겁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화장실이 없을 때입니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없을 때입니다. 레디 이외에도 많은 의사들도 이런 종류의 실험을 하면서 자연발생을 부정합니다. 루이 파스퇴르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학적인 견지에서 자연발생을 부정한 거죠. 그러나 자연을 이루는 원소와 그들의 화학적 반응을 연구하는 화학자들은 좀 다릅니다. 화학적 견지에서 생명의 본질과 기원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거죠. 화학자는 생명을 ‘움직이는 물질’로 간주하는 의학자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합니다. 의학자의 ‘부정’에서 화학자의 ‘긍정’으로 스웨덴의 화학자로 오늘날 쓰는 원소기호 대부분을 정한 베르셀리우스(Jons Jacob Berzelius, 1779~1848)는 무기물이 유기물로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여기에는 ‘vital force(결정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독일의 화학자 뵐러(Fredrich Wohler, 1800~1882)는 무기물이 유기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학자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기화합물은 ‘vital force’가 작용해야 만들어진다고 믿어왔지만 그는 무기화합물인 암모늄 사이아네이트를 가열해서 유기 화합물인 요소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무기 화합물로부터 유기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화학자들에 의한 생명의 기원을 유기물에 두고, 무기물이 유기물로 변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유기물이 다시 생명체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오파린의 주장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결정적인 힘’이 뭔가요? 오파린이 주장한 것처럼 천둥과 번개가 될 수 있고, 태풍이나 홍수도 될 수 있습니다. ‘결정적 힘’이란 자연계에서 아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오파린의 원시지구의 가설도 일어나기 힘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오파린의 가설은 다시 1953년 시카고 대학의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 교수에 의해 큰 힘을 받게 됩니다. 1934년 중수소 발견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헤럴드 유리(Herold Urey) 교수의 제자였던 밀러의 실험 이후 많은 학자들이 무기물에 에너지(힘)를 공급하면 복잡하면서도 질서가 있는 유기적 조직체로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그러나 가설은 항상 도전을 받습니다. 그 속에서 가설이 맞는 이론으로 입증되기도 하고, 틀린 이론으로 묻히기도 합니다. 나중에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의 원시 대기가 환원성 대기가 아니었다는 반론을 폅니다. 또 밀러의 실험을 직접 다시 해본 결과 아미노산 생성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며 오파린을 반박합니다.  

 

2. 생명의 정의가 어려운 만큼, 기원도 어려워 결국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쓰레기통에서 구더기가 새로 생긴다’는 게 아니라 설사 유기물인 단백질이 만들어졌다손 쳐도 그걸 생명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느냐? 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러면 다시 어려워지는 거죠. 생명의 기원에 대해 종지부를 찍는 것은 간단합니다. 화학적 반응이든, 아니면 다른 과학적 수단을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꿈틀거리는 벌레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성서를 굳게 믿고 교회도 열심히 나가야 하는 건가요? 글쎄, 간단하면서도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을 과학적인 면에서 바라보든, 철학적인 면에서 바라보든, 또 당장 증명할 수 없는 긴 자연의 역사 진화론에서 바라보든, 아니면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주장하든,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파린을 적어도 대립이나 흑백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자는 겁니다. 그것이 과학과 학문에 접근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Life can be defined as an organized genetic unit capable of metabolism, reproduction, and evolution. 생명이란 물질대사, 생식, 그리고 진화능력을 갖춘 유전적 개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생명이면 그저 생명이지,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고, 피곤한 건가요?